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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드라마

[드라마리뷰] 호텔델루나 (2019)

꿈과 환상같은 공간

애처롭지만 잔잔히 밝은 여운이 남는 드라마

 


ⓒ tvn, 출처 호텔델루나 홈페이지

연출 오충환

각본 홍정은, 홍미란 

출연 이지은, 여진구 외

개요 TV드라마/ 로맨틱코미디/ 한국/ 2019년

홈페이지 program.tving.com/tvn/hoteldelluna

 

호텔 델루나

엘리트 호텔리어가 운명적인 사건으로 호텔 델루나의 지배인을 맡게 되면서 달처럼 고고하고 아름답지만 괴팍한 사장과 함께 델루나를 운영하며 생기는 특별한 이야기

program.tving.com


#감상

 올해 읽은 책 중에 「융의 영혼의 지도」가 있다. 책을 읽은 후 나에게 일어난 변화 중 한 가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초과학적인 일을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금 2020년 현재하고 있는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나와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주가 담겨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우주(=세계)이고 우주는 나다. 최근에 우연히 산 책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인걸 보면 이 또한 동시성을 마주한 건 아닌지 생각한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받아들일 최소한의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또 우연히 찾아온 드라마가 「호텔델루나」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 보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게 이 재밌고 소중한 드라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먼저 출연 배우들에 대해 말해보고 싶은데 그 이유는 나의 나이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초반 출생으로 나에게 이지은 님과 여진구 님은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기’였다. 보통 TV나 유튜브 같은 시청 매체에서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와 비슷하다고 해도 훨씬 어리게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에게 이지은 님은 아이유의 마시멜로우! 였고 여진구 님은 해를 품은 달의 아역배우였다. 한동안 외국에서 지내느라 한국 물정을 잘 몰랐던 것도 이 급속한 변화를 느끼는 것의 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이지은 님과 여진구 님 주연의 드라마라는 이유로도 호텔델루나는 진입장벽이 꽤 두텁게 느껴졌다. 하지만 드라마 1화를 재생하고 계속해서 시청할수록 주연배우 두 분은 장만월과 구찬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여진구 님은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연기력이 좋다고 느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영혼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시간을 보내는 호텔델루나를 운영하는 장만월, 그런 장만월이 우연히 고용하게 된 구찬성. 이 둘이 만나 호텔을 방문하는 손님의 한을 풀어주거나 호텔 밖의 억울한 영혼의 한을 풀어주고 끝내는 호텔의 모든 이의 이승에 남겨진 미련 담긴 마음을 달래어 준다. 호텔의 모든 이에는 지현중(프런트 맨), 바텐더(김선비), 최서희(객실장) 그리고 장만월도 포함된다. 손님들 포함한 모든 영혼의 사연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참 가슴 아리다. 한국인의 정서라고도 일컬어지는 한(恨)이 모든 사연을 관통하고 있다. 구찬성이 가져온 우연으로 그리고 운명으로 마지막 영혼인 장만월의 한이 풀리며 드라마는 끝난다.

 이제까지 봤던 드라마 중에 호텔델루나는 단연 여운이 길었는데 아마 그 이유는 사유할 주제를 많이 던져주기 때문이다. ‘용서’, ‘업’, ‘사랑’이 내가 사유의 주제다.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인간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혹은 ‘인간은 자신을 상처입힌 상대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가’같이 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정말 궁금한 질문이다. 나의 답을 말해보자면 난 작년까지는 용서받지 못할 일은 무수히 많고 나에게 개인적으로 깊이 상처를 낸 사람을 평생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처에서 멀어지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많이 익혀가면서 용서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다시금 아프게 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며 이 세상 누구에게도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 변화의 물살을 타는 중에 호텔델루나를 보며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을 용서하는 과정은 필연 나를 달래는 과정이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분노를 다른 아이를 없애는 데에 조준하고 있던 객실장은 끝에 결국 자기 자신이 그때의 그 사상에 갇혀 아이를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해 버림을 느끼며,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라고 말한다. 용서란 명명백백하게 누군가가 잘못하여 사과해서 그 일을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과정으로 흐르지 않는다. 일단 뼈저리게 그때의 그 상황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서 그 장면안의 모든이를 꾸짖어보고 화내고 소리치다가 끝끝내 자기 자신을 꾸짖고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시절 흥미롭게 들은 수업 중 하나가 인도불교 철학이다. 그 수업에서 업(카르마), 윤회, 연기, 해탈 등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이 불교 철학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 업은 살아가면서 굉장히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전생의 업 때문이다. 내가 지금 좋은 덕을 많이 쌓으면 다음 생에는 더 좋게 환생할 수 있다. 복잡하고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지금의 세상을 살아갈 때 참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포기 주문이면서도 희망 주문이다. 호텔델루나는 환생, 업 등의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개념을 채용했다. 일단 주인공들의 관계가 모두 전생과 관련되어 있고 (장만월, 고청명 제외) 그때의 인연이 계속 영향을 미친다. 드라마를 보며 떠오르는 것은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의심과 바람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면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힘의 논리로 흘러가는 무수히 많은 사건도 있었다. 과연 누군가는 이 세상을 바르게 하는 것일까, 나는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정말로 업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소멸하거나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요즘 들어 제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좋다/나쁘다 옳다/그르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눌 수는 없다. 상황은 전부 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삶을 이끌어가며 정해지지 않은 그 모든 것을 정해지지 않은 채로 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 사유할 수 있도록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이 이 드라마에 고마운 하나의 이유다. 사랑과 초자연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한 문단씩 적고 싶지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금방 정리될 것 같지 않아 여기서 줄인다. 드라마나 책을 읽고 왜 감상문을 쓰는 건지 초등학생 때부터 궁금했는데 요즘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보고 느낀 생각의 정리가 된다. 그리고 내가 받기만 했던 감정을 밖으로 토해내어 나의 세상 안과 밖의 균형을 맞춘다. 호텔델루나를 보고 일주일은 넘게 다른 무언가를 보지 못하고 여운 속에 살았다. 보통 한 작품을 다 보고 그다음 작품을 바로 볼 수 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운이 긴 만큼 토해낸 글도 길지만 내 생각의 10분의 1도 담지 못한 기분이다. 전개의 호흡, 출연자의 연기력 등 말이 있는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이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오랜만에 본 한국드라마인데 너무 인상 깊게 봐서 다른 한국드라마도 찾아봐야겠다.